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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문은 비워 두고: 한국 절을 걷는 법
서울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조계사. 누빔 조끼를 입은 한 여성이 대웅전 돌계단을 올라 신발을 벗는다. 넓은 가운데 문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친다. 두 손을 모은 채 옆쪽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 벽 가까이 놓인 네모난 방석 위에 무릎을 꿇는다. 몇 미터 뒤에서는 한 방문객이 가운데 문턱에 멈춰 서서 정면의 금빛 불상을 화면에 담고 있다. 아무도 말이 없고, 여성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녀가 따른 규칙은 어디에도 영어로 적혀 있지 않다. 한국의 절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에 관해 말로 하지 않는 여러 규칙 가운데 하나다.
문은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순서다
한국의 산사에 닿으려면 여러 개의 문을 차례로 지나야 한다. 첫 문은 대개 일주문이다. 기둥이 공간을 에워싸지 않고 한 줄로 늘어서 있어 붙은 이름이다. 부산 위쪽 산자락에 자리한 범어사의 일주문은 높은 돌기둥 위에 서 있는데, 전국에서 사진에 가장 많이 담기는 문 가운데 하나다. 절을 자주 찾는 이들은 흔히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위쪽 대웅전을 향해 돌아서서 반배를 올린다.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는 반절이다. 2초면 끝나는 이 동작이 길이 절로 바뀌는 지점을 표시한다.
조금 더 오르면 천왕문이 나온다. 안에서는 채색된 거대한 수호신 넷이 양쪽에서 내려다보고, 저마다 발밑에 작은 악귀를 짓밟고 있다. 아이들은 움찔하지만 어른들은 대개 멈춰 서서 올려다보지 않고 같은 걸음으로 지나간다. 어떤 절에는 세 번째 문인 불이문이 더 있고, 그 너머로 마당이 펼쳐진다. 이 순서에는 뜻이 있다. 대웅전에 이를 즈음이면 바깥의 거리는 이미 뒤에 두고 왔어야 한다.
가운데 문이 비어 있는 이유
절의 중심 법당은 대개 대웅전, 곧 ‘위대한 영웅’을 모신 전각으로, 역사 속 부처인 석가모니를 모신다. 정면은 보통 세 칸의 문으로 나뉜다. 가운데 문인 어간문은 본존불과 정확히 일직선을 이루며, 관례상 예불을 이끄는 큰스님들을 위해 비워 둔다. 일반 신도와 방문객은 옆문을 쓴다. 안에서도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이고, 가운데 문에서 불단까지 이어지는 통로에는 들어서지 않는다. 방문객이 주변을 잘 살펴 왔는지는 다른 어떤 몸짓보다 이 하나에서 드러난다.
가운데 문은 스님들께 비워 두고, 옆문으로 들어가세요.
신발은 바깥 돌계단에서 벗는다. 나올 때 바로 신을 수 있도록 앞코가 법당 반대쪽을 향하게 둔다. 안에는 방석이라 부르는 납작한 깔개가 벽 쪽에 쌓여 있다. 참배객은 하나를 꺼내 절을 올린 뒤,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춰 다시 쌓아 둔다. 큰절은 무릎과 팔꿈치, 이마를 바닥에 대는 절로, 보통 세 번 올리며 이를 삼배라 한다. 절을 하고 싶지 않다면 한쪽에 조용히 1분쯤 앉아 있어도 된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방문객도 많다.
탑을 돌고, 초를 밝히고
대웅전 앞마당에는 흔히 석탑이 서 있다. 탑을 도는 사람들은 탑을 오른쪽에 두고 시계 방향으로 걷는다. 이를 탑돌이라 하는데, 연등 축제가 열리는 저녁이면 수백 명이 천천히 걷는 행렬이 된다. 반대 방향으로 돈다고 해가 되지는 않지만, 눈에 띄기는 한다.
법당 근처의 접수대나 작은 사무실에서는 초와 향, 때로는 공양미 봉지를 판다. 참배객은 종이에 이름이나 소원을 적고, 유리문이 달린 함에 초를 세운 뒤, 이미 타고 있는 불에서 향을 붙인다. 법당 안의 시주함에는 복전함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다. 얼마를 넣을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방문객이 꼭 무언가를 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초를 산다면 값은 접수대에서 정한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몇 주 동안 조계사 마당은 종이 연꽃 등이 이룬 지붕 아래로 자취를 감춘다. 등마다 하얀 꼬리표가 달려 있고, 거기에는 한 가족의 이름이 정성 들인 손글씨 한글로 적혀 있다.
북과 종이 전하는 말
규모가 큰 절에는 대개 범종각이 있다. 이곳에는 사물이라 불리는 네 가지 법구가 함께 놓여 있다. 커다란 청동 범종, 통 모양의 법고, 나무로 깎은 목어, 구름 모양의 쇠판인 운판이다. 저녁 예불 때면 스님들이 이를 차례로 친다. 법고는 땅을 걷는 짐승에게, 목어는 물에 사는 생명에게, 운판은 하늘을 나는 존재에게, 범종은 지옥의 중생에게 말을 건넨다. 대부분의 절에서 가까이 서서 듣는 것은 환영받는다. 누각 위로 올라가거나, 조명을 켠 채 바짝 다가가 촬영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법당은 고요로 움직인다. 휴대전화는 무음으로 바뀌고, 대화는 속삭임으로 잦아든다. 많은 법당에 촬영금지라는 작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안내판이 없더라도 절하는 사람에게 렌즈를 들이대지 않는 것이 예의다. 독경의 박자는 목탁이라는 나무 법구가 이끄는데, 문에 닿기도 전에 그 소리가 먼저 들려온다. 걸음을 늦추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된다.
스님, 그리고 남김없이 비우는 그릇
비구든 비구니든 스님이라 부른다. 좁은 길에서 스님과 마주치면 한쪽으로 비켜서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거나, 가슴 앞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악수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옷차림은 아무 시선도 끌지 않는다. 해변에나 어울릴 옷차림은 시선을 꽤 많이 끈다.
어떤 절에서는 공양간에서 방문객에게 점심을 내는데, 이 식사를 공양이라 한다. 줄을 지켜보면 규칙은 분명하다. 먹을 만큼만 덜고, 대화는 낮게 나누고, 남김없이 비운 뒤, 다른 사람들이 그릇을 내놓는 곳에 똑같이 내놓는다. 하룻밤 머무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서는 정식 의례인 발우공양을 배운다. 마지막 밥알은 단무지 한 조각으로 그릇에서 훔쳐 내고, 헹군 물까지 마셔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다.
떠나기 전에
조계사는 인사동 끝자락에 있으며, 3호선 안국역과 1호선 종각역에서 걸어서 금방이다. 강남 코엑스 건너편의 봉은사는 9호선 봉은사역이 따로 있고, 우뚝 선 미륵대불이 입구에서부터 보인다. 범어사는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거나 가파른 오르막을 걸어 오르면 된다. 도심 사찰은 주말과 음력 초하루·보름에 가장 붐빈다. 기도하러 오는 신도들이 몰리는 날이다. 가장 한적한 때는 평일 이른 아침이다.
부처님오신날은 음력 4월 8일이어서 양력 날짜가 해마다 바뀐다. 날짜와 연등 행렬 일정은 한국관광공사나 해당 사찰에서 확인하자. 초와 연등,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일부 산사의 문화유산 구역에는 별도 비용이 든다. 현재 요금과 예불 시간은 종무소라 불리는 절 사무실에 묻거나 템플스테이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하면 된다. 피해야 할 실수는 단 하나, 대웅전 가운데 문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거나 그 앞 통로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일이다. 옆문으로 들어가 벽을 따라 움직이자. 절을 자주 찾는 이들이 눈여겨보는 것은 바로 그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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