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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선교장, 지은 가문이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조선의 집
강릉 경포호에서 내륙 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1700년대 초부터 한 가문이 일군 집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가문은 지금도 이곳에 산다. 선교장(船橋莊)은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서둘러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는 것보다, 느긋하게 한 시간쯤 머무는 편이 이 집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배다리에서 얻은 이름
이름을 풀면 대략 '배다리 집'이라는 뜻이다. 집을 지을 무렵에는 호수가 지금보다 훨씬 가까이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손님들은 줄지어 묶어 둔 배를 건너 대문에 닿았다. 그 뒤로 물은 바닷가 쪽으로 물러났다. 지금은 평평한 땅을 걸어 들어가게 되니, 길게 뻗은 기와 담장이 문득 눈앞에 나타난다.
선교장은 배를 이어 만든 다리를 건너 들어가던 집이라는 데서 이름을 얻었다.
눈여겨볼 것들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에는 툇마루 위로 동판 지붕을 얹은 차양이 달려 있다. 20세기 초에 덧댄 것으로, 오래된 목재 사이에서 어딘지 서양풍으로 보인다. 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차양을 단 한옥은 드물다. 마당 건너편의 활래정(活來亭)은 일부를 연못 위로 내어 지은 정자다. 돌기둥 위에 마루를 올려 그 아래로 물이 흐르게 했다. 7월과 8월이면 연꽃이 연못을 뒤덮는다. 늦가을이 되면 줄기가 말라 정자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난다.
안채와 부엌 마당, 곳간은 마당 하나가 다음 마당으로 이어지도록 배치되어 있다. 순서대로 걸어 보면 조선의 대갓집이 하루를 어떻게 나누어 살았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하룻밤 머물기
일부 방은 한옥 스테이로 운영되며, 따뜻한 온돌 바닥과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을 갖췄다. 숙박은 미리 예약해야 하지만, 낮에 둘러보는 방문객은 그냥 걸어 들어가면 된다. 문을 연 뒤 첫 한 시간 안에 찾아가 보자. 갓 비질한 마당에 인적도 거의 없다. 그다음엔 택시로 잠깐 달려 오죽헌으로 향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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