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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레이가(永利街), 영화 한 편이 불도저에서 구해낸 홍콩의 골목
래더 스트리트(楼梯街)는 할리우드 로드에서부터 여러 세대의 발길에 닳아 얕아진 돌계단으로 올라가다가, 꼭대기 즈음에서 경사가 문득 사그라든다. 한쪽으로 평평한 터가 열리는데, 셩완(上环, Soeng Waan)의 언덕들 사이에 낀 겨우 백 미터 남짓의 평지다. 그 길을 따라 낮은 연립주택 한 줄이 늘어서 있고, 다름 아닌 영화 한 편이 한때 이곳을 철거 목록에서 지켜냈다.
할리우드 로드 위의 평평한 터
이곳이 윙레이가(永利街, Wing Lei Gaai), 대부분의 지도가 이름조차 잘 적어 두지 않는 짧은 골목이다. 길을 따라 전후에 지어진 통라우(唐楼, tánglóu)가 열두 채 남짓 서 있다 — 1950년대의 3, 4층짜리 엘리베이터 없는 연립주택으로, 베란다가 보도 위로 비스듬히 내밀어져 있다. 동네의 나머지는 항구 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지만, 이 한 뙈기만은 평평하다. 인쇄업자와 제본공, 자잘한 가게들이 한때 1층을 빼곡히 채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곳은 무엇 하나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다. 매표소도, 화살표도, 기념품 가게도 없고, 평일 아침이면 가장 큰 소리라야 창살 너머의 라디오 소리다. 이 거리의 매력은 오롯이, 섬의 거의 모든 곳이 재개발된 지금도 여전히 평범한 홍콩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재개발을 멈춰 세운 상
2010년, 영화감독 앨릭스 로(罗启锐)는 1960년대 홍콩을 힘겹게 버텨 나가는 어느 구두장이 가족의 이야기 《세월신투(岁月神偷, Suìyuè Shéntōu)》를 내놓았고, 그 상당 부분을 이 골목에서 찍었다. 그해 2월 이 영화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크리스탈 베어(Crystal Bear)상을 받았을 때, 윙레이가는 이미 재개발국(Urban Renewal Authority)이 스탠턴 스트리트·윙레이가 일대를 대상으로 세운 재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 수상은 조용하던 도시계획 사안을 대중적 운동으로 바꿔 놓았다. 몇 달 만에 계획은 윙레이가의 통라우를 밀어 버리는 대신 보존하는 쪽으로 수정되었고, 인근 블록들이 헐리는 동안 이 한 줄은 거의 온전히 살아남았다. 이런 다툼을 대개 크레인의 손을 들어 주며 매듭짓는 도시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전개다.
영화는 그저 거리를 쓰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거리에 닥칠 운명을 바꿔 놓았다.
一部电影替一条街挡下推土机,这样的事在香港并不多见。
영화가 실제로 거리에 남긴 것
화면 속 구두 가게를 기대하고 찾아온 이들은 대신 밋밋하게 미장된 외벽을 마주한다. 그 가족의 점포며 손으로 그린 간판, 시대를 재현한 잡동사니는 촬영을 위해 설치되었다가 카메라가 떠나자 걷어 낸 세트 장식이었다. 남은 것은 영화가 고른 건축이지, 그 위에 덧입힌 허구가 아니다.
이 점은 오기 전에 알아 두는 편이 좋다. 실망하는 사람이 흔하지만, 피할 수 있는 실망이기 때문이다. 이 거리는 결코 그 영화의 박물관이 아니었다. 다만 그 영화가 진짜처럼 느껴지게 한 이유였을 뿐이고, 그것은 사뭇 다르고 더 조용한 무엇이다. 카메라가 섰던 자리에 서 보면 화면은 지금도 스스로 구도를 잡는다 — 계단, 베란다, 그리고 그 뒤로 비죽 솟은 더 새로운 고층 건물의 한 조각.
전후 통라우 읽기
통라우는 엘리베이터 없는 상가주택이다. 길가 층에는 가게나 작업장이, 그 위로는 살림집이 있고, 계단은 있되 승강기는 없다. 윙레이가의 사례들은 이 유형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 준다 — 콘크리트로 내민 캔틸레버식 베란다, 쇠창살, 그리고 더 큰 건물이라면 안뜰이 맡았을 몫을 대신하는 뒤편의 좁은 채광정. 여러 채가 보존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래서 페인트가 말끔하고 창틀도 손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곳의 옛 세입자들을 보면 왜 이 땅이 평평해야 했는지 알 수 있다. 셩완은 홍콩의 인쇄·제지 지구였고, 무거운 인쇄기와 건조대를 놓으려면 바닥이 평평해야 했다. 활판 인쇄소와 제본소가 수십 년간 이곳에 모여들었다. 지금도 몇몇 인쇄·문구 가게가 주변 골목에 남아 버티는데, 열린 문 너머로 금속 활자와 재단기가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변해 가는 주변 블록들
윙레이가는 홍콩섬에서 걷기 좋기로 손꼽히는 한 모퉁이 안에 자리한다. 래더 스트리트(楼梯街, Lóutī Jiē)는 여기서 할리우드 로드(荷李活道)와 만모묘(文武庙)로 내려간다. 만모묘는 1847년에 짓기 시작한, 문(文)과 무(武)의 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입장은 무료이며 천장에 매달린 향의 연기로 자욱한 방을 만나게 된다. 서쪽으로 몇 분 거리에는 옛 경찰 기혼자 숙소가 2014년 PMQ(元创方)로 다시 문을 열었다. 애버딘 스트리트(鸭巴甸街)에 있는 이 디자인 복합공간은 거닐어도 한 푼 들지 않는다.
교훈은 그 대비에 있다. 걸어서 얼마 안 되는 거리들 — 스탠턴 스트리트(士丹顿街)의 일부도 그중 하나다 — 은 유리와 반들거리는 로비로 다시 지어졌지만, 이 한 골목만은 1950년대의 규모를 지키고 있다. 두 곳을 나란히 걸어 보면, 한 블록 안에서 지켜 낸 홍콩과 갈아치운 홍콩을 동시에 보게 된다.
조용히 다녀오기
가장 간단한 길은 MTR 셩완역(上环站) A2 출구로 나와, 할리우드 로드와 래더 스트리트 쪽으로 가파른 십 분을 걸어 오르는 것이다. 센트럴에서 오는 요금은 옥토퍼스 카드로 몇 홍콩달러면 된다. 언덕이 부담스럽다면, 센트럴–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中环至半山自动扶梯)를 타고 할리우드 로드까지 올라가 나머지를 걸어도 된다. 거리 자체는 무료이고 늘 열려 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평일, 늦은 아침이 되기 전에 오시라. 빛이 골목 안으로 내려앉되 인파는 아직 들지 않은 때다. 그 고요를 기다리는 동안, 퀸스 로드 아래쪽의 차찬텡(茶餐厅)에서 이십 홍콩달러 남짓이면 밀크티(奶茶) 한 잔을 내어 준다. 피해야 할 한 가지 실수는 이곳을 세트로 대하는 것이다. 창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대지 말고, 문간을 막지 말며, 그 구두 가게를 기대하지 마시라 — 주민들이 바로 그 점을 두고 불만을 토로해 왔고, 이 거리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결코 침범해도 좋다는 허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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