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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다산초당, 유배 학자가 차를 마시러 넘던 고갯길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은 오르막이라기보다, 디딜 곳을 하나씩 골라 가며 걷는 길이다. 소나무와 삼나무 뿌리가 다져진 흙을 뚫고 올라와 쓰러진 사다리의 가로대처럼 길을 가로지른다. 수많은 발길에 닳은 뿌리는 묵은 밤빛을 띠고 있어서, 대부분은 발밑을 보며 오른다. 꼭대기에는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 강진만을 내려다보는 빈터가 있다. 학자 정약용이 18년 유배 생활 가운데 마지막 10년을 보낸 곳이다. 그 뒤로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면 그가 차를 마시러 걸어가던 절이 있다.
초당에 기와지붕이 얹힌 까닭
정약용은 호인 다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호는 뒷산에서 따왔다. 茶山, 곧 「차의 산」. 만덕리 마을 위 만덕산 비탈에 자라던 야생 차나무에서 나온 이름이다. 초당은 「풀로 지붕을 이은 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길 끝에 선 건물에는 기와지붕이 얹혀 있다. 옛터에 훗날 다시 지은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 어긋남이 이곳이 들려주는 첫 번째 정직한 이야기다. 이곳은 살아남은 집이 아니라, 집이 있던 자리에 세운 기념의 공간이다.
그 양옆에는 작은 목조 건물 두 채가 있다. 동쪽의 동암과 서쪽의 서암이다. 전해지기로는 동암에 그의 책이 있었고, 저술도 대부분 여기서 했다. 고을 수령이 백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길게 풀어 쓴 『목민심서』도 그중 하나다. 건물은 소박하다. 창호지를 바른 문살에 좁은 나무 툇마루가 전부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보다는 들여다보는 곳이다. 고요한 아침이면 대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아래 길에서 누군가 숨을 고르는 소리만 들린다.
그가 언덕에 남긴 네 가지 흔적
현장의 해설사와 초당 옆 안내판은 「다산사경(茶山四景)」을 이야기한다. 정약용이 손수 만들거나 새겨 둔 네 가지 작은 것들이다. 초당 뒤편 맨바위에는 丁石, 정석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의 성에 「돌」을 뜻하는 글자를 더한 것인데, 얕게 새겨져 있어 일부러 찾아야 보인다. 그 아래에는 약천이 있다. 그가 젖은 땅을 파내 맑은 물이 솟게 했다고 전하는 샘이다.
초당 앞에는 다조가 놓여 있다. 넓고 평평한 돌로, 비탈에서 주운 솔방울을 땔감 삼아 차를 달이던 부뚜막으로 썼다고 한다. 한쪽에는 연지석가산이 있다. 네모난 작은 연못 가운데에 돌을 쌓아 올린 것으로, 그 돌은 아래 바닷가에서 날라 왔다. 넷 중 어느 것도 그 자체로 대단하지는 않다. 하지만 함께 놓고 보면, 시간은 넘치게 많았고 그 시간이 무언가를 남기기를 바랐던 한 사람의 흔적처럼 읽힌다.
다산초당 가는 길은 오르막보다 나무뿌리가 먼저 발에 걸린다.
백련사로 넘어가는 고갯길
동암을 지나면 길은 천일각으로 이어진다. 훨씬 뒤에 벼랑 위에 세운 정자로, 잔잔한 강진만이 내다보인다. 거기서 길은 안쪽으로 꺾여 오르막이 된다. 동백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이 산에 이름을 준 키 작은 차나무 사이로 난 좁은 흙길이다. 대부분 편도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경사는 완만하지만 노면은 그렇지 않다. 숲 그늘 아래의 돌과 뿌리는 비가 그친 뒤에도 오래 젖어 있다.
길 양쪽 끝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는 한 우정에 관한 것이다. 백련사의 승려 혜장과 유배 온 유학자는 이 고개를 오가며 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개는 정약용의 차 마시는 습관도 절 쪽에서 왔다고 전한다. 백련사는 오래된 동백 숲에 둘러싸여 있고, 추운 계절이면 꽃이 선홍빛 그대로 통째로 이끼 위에 떨어진다. 한국인 방문객들은 동백이 꽃잎을 흩뿌리지 않고 송이째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곧잘 꺼낸다. 절 마당은 작고 사람 사는 기운이 배어 있다. 계단 앞에 가지런히 놓인 스님들의 고무신, 바가지가 놓인 수돗가, 그리고 천일각에서 보았던 바로 그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읍내로 내려와서: 주막 뒷방과 한 상 가득한 밥상
언덕 위로 거처를 옮기기 전, 정약용은 군 소재지인 강진읍에서 한 노파가 꾸리던 주막의 뒷방에 머물렀다. 그 자리는 마당을 둘러싼 초가 몇 채로 복원되어 사의재가 되었다. 네 가지를 바르게 지키는 방이라는 뜻이다. 생각, 용모, 말, 행동. 읍내 중심가와 가까워서, 버스로 도착해 만덕리로 가기 전에 시간이 남는다면 먼저 들르기 좋다.
강진은 전라남도 남도 음식의 고장이고, 한정식을 먹으러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 밥과 국에 젓갈, 나물무침, 생선구이, 때로는 게장까지 작은 접시가 한가득 차려지는 한 상이다. 한정식집 중에는 2인 이상부터 상을 차리고 상 단위로 값을 받는 곳이 많다. 혼자 여행한다면 자리에 앉기 전에 입구에서 먼저 물어보는 게 좋다. 초당 길 어귀에 있는 다산박물관에는 그의 저술 사본이 있고, 언덕 위 안내판보다 유배 생활을 훨씬 자세히 풀어 놓았다.
찾아가는 길, 그리고 내려오는 길
대부분의 여행자에게는 버스가 가장 간단하다. 서울과 광주 유스퀘어 터미널에서 강진터미널까지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다닌다. 시간표와 요금은 운수 회사 예매 사이트와 매표소에서 확인할 수 있고, 주말에 간다면 며칠 전에 미리 확인해 두는 게 좋다. 강진읍에서 만덕리와 초당 쪽으로 가는 군내버스는 자주 다니지 않는다. 시간표는 터미널과 강진군 홈페이지에 나와 있고, 여의치 않으면 터미널 앞 택시 승강장을 이용하면 된다.
이른 시간에 가자. 단체 관광객보다 먼저 길을 걸을 수 있고, 천일각에서 바라보는 강진만의 빛이 아직 낮게 깔려 있을 때를 만날 수 있다. 백련사의 동백 철은 추운 계절 내내 이어지고, 초가을에는 서늘하고 발밑이 보송하다. 박물관과 사의재의 운영 시간과 입장료는 군에서 정하고 절은 따로 안내문을 내걸기 때문에, 강진군 관광 홈페이지나 현장에서 확인하는 게 좋다. 신발은 접지력이 확실한 것으로 신자. 젖은 뿌리 길은 밑창이 매끈한 신발을 봐주지 않는다.
피해야 할 실수는 내려갈 방법도 정하지 않은 채 백련사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이다. 절로 이어지는 길은 한적하고, 버스는 드물고, 택시도 좀처럼 지나가지 않는다. 고개를 다시 넘어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거나(거꾸로 걸어도 즐거운 길이다), 출발하기 전에 터미널에서 지역 택시 번호를 저장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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