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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평상, 동네가 앉는 자리
따뜻한 오후, 낙산공원 아래 이화동의 언덕 골목에서는 이런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구멍가게 앞에 낮은 나무 마루가 놓여 있고, 그 옆 아스팔트 위에는 샌들 서너 켤레가 앞코를 바깥으로 향한 채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위에서는 누군가 스테인리스 양푼에 콩나물 꼬리를 다듬고, 한쪽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접은 수건을 베고 잠들어 있다. 이 마루가 평상이다. 한국의 동네가 가진 것 가운데 집 앞 포치에 가장 가까운 자리다.
바깥으로 들고 나온 방바닥 한 조각
평상은 짧은 다리 위에 나무 살을 깐 마루다. 높이는 무릎쯤이고, 네 사람이 느슨하게 둘러앉거나 한 사람이 반듯이 누울 만한 너비다. 위에 장판을 깐 것도 많다. 오래된 한국 집의 방바닥을 덮는 누런 갈색 비닐 장판을 크기에 맞게 잘라 네 귀퉁이를 박아 고정한 것이다. 이 장판이 단서다. 평상은 벤치도 탁자도 아니다. 실내의 바닥 한 칸을 바깥 공기 속에 내려놓은 것이다.
한국의 살림은 오랫동안 바닥 가까이에서 이루어졌다. 온돌이라 부르는 따뜻한 바닥 위에서 사람들은 밥을 먹고, 빨래를 개고, 잠을 잔다. 평상은 그 바닥을 골목까지 넓힌다. 작은 동네 가게인 동네 슈퍼 앞에서, 그리고 수많은 농촌 마을 어귀에 그늘을 드리우는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평상을 볼 수 있다.
가장자리는 벤치, 위는 방
방문객이 다른 사람들의 발을 보고 읽어내야 하는 규칙은 이렇다. 가장자리와 윗면은 서로 다른 장소다. 두 발을 땅에 둔 채 끝에 걸터앉는 것은 잠시 들르는 일이고, 신발은 그대로 신는다. 다리를 올리는 것은 안으로 들어서는 일이어서, 신발을 먼저 벗어 땅에 둔다. 문간에서 그러듯이.
신발은 벗고 올라오세요.
머뭇거리고 있으면 「신발은 벗고 올라오세요」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 올라가면 대부분 양반다리로 앉고, 발바닥이 어른 쪽을 향하지 않도록 한다. 길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은 그대로 길바닥에 두거나 평상 가장자리에 걸어 둔다. 골목을 걷는 날이라면 나서기 전에 양말을 살펴 두는 것이 좋다. 구멍 난 양말이 눈에 띄는 곳이 바로 여기다.
모든 평상에는 주인이 있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공공 시설물이 아니다. 가게 앞 평상은 가게 주인이 내놓은 것이고, 마을 나무 아래 평상은 주변 집들이 돌본다. 날이 궂어지면 경로당을 찾는 바로 그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단골에게는 저마다 자리가 있다. 벽에 기댈 수 있는 그늘진 끝자리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의 몫이 되곤 한다.
낯선 사람도 가장자리에 앉는 것쯤은 대개 너그럽게 봐준다. 자리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게 안에서 무언가를 사는 것이다. 달콤한 쌀 음료인 식혜 한 캔이나, 문 옆 냉동고에서 꺼낸 아이스크림 하나면 충분하다. 「안녕하세요」 인사는 앉고 나서가 아니라 앉기 전에,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건넨다. 누군가 노란 참외 한 조각을 내밀어 준다면, 그것은 거래가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라는 초대다.
평상 위의 사람들은 자기 집에 있는 사람들로 대하자. 카메라를 들기 전에 먼저 묻고, 목소리는 그들의 크기에 맞춘다. 북촌처럼 방문객이 몰리는 주택가 골목에서는 정숙을 부탁하는 안내문을 보게 된다.
이번 달, 평상이 하는 일
평상에는 달력이 있다. 한여름에는 쟁반 위에 쐐기 모양으로 썬 수박이 오르고, 아래에서는 초록색 모기향이 타고, 종이부채가 손에서 손으로 돈다. 남자들은 무릎 사이에 판을 걸쳐 놓고 장기를 두고, 가장자리에는 몇 사람이 둘러서서 아무도 청하지 않은 훈수를 둔다.
늦여름이면 평상 위가 붉어진다. 고춧가루로 빻기 전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고추로 뒤덮이는 것이다. 11월 무렵에는 겨울 김치를 담그는 김장이 찾아오고, 평상은 절인 배추와 양념 대야가 쌓인 작업대가 된다. 그러고 나면 비워진다. 추운 몇 달 동안 많은 평상이 벽에 모로 세워지거나 파란 방수포를 덮어쓴 채 남고, 이야기는 땅이 다시 따뜻해질 때까지 실내로 자리를 옮긴다.
계곡에서는 평상이 곧 식탁이다
장사하는 평상도 있는데, 한국 여름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산 계곡의 식당들은 물가에 평상을 줄지어 놓고, 평상마다 낮은 접이식 상과 방석 한 무더기를 올려 둔다. 서울 북쪽 끝 북한산 자락의 우이동에서, 그리고 국립공원 북서쪽 양주의 송추에서, 가족들은 바짓단을 걷어 올린 채 몇 시간이고 자리를 잡는다.
주문은 대개 닭백숙이다. 닭 한 마리를 마늘, 대추와 함께 살이 풀어질 때까지 푹 끓인 음식이다. 먼저 간장과 깨로 양념한 도토리묵을 곁들인다. 여기서 평상은 주문으로 빌리는 자리다. 음식값은 한 사람당이 아니라 한 상 기준으로 매겨지고, 자릿세라는 이름의 자리 요금을 따로 받는 곳도 있다. 많은 계곡에서 한때 물 위에 놓였던 평상들이 식당 부지 안으로 물러났으니, 물가에 앉았다가 계곡으로 걸어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평상 찾기, 그리고 잘 앉는 법
동네 평상을 보려면 서울 지하철 4호선을 타고 혜화역에 내려 낙산공원 쪽으로 언덕을 오른다. 이화동과 이웃한 창신동의 골목은 가파른 주택가여서, 더위가 한풀 꺾이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는 늦은 오후에 걸어서 보는 것이 가장 좋다. 계곡 평상을 찾는다면 우이신설선의 종점인 북한산우이역에서 내린다. 거기서부터 계곡 길이 식당들을 향해 올라간다. 철은 대략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다. 겨울에 찾은 사람은 거두어 둔 평상을 보게 될 텐데, 그것 또한 이 거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 주는 하나의 정보다.
계곡 식당은 한여름 주말에 붐비고 평일에는 한결 한산하다. 닭 한 마리를 익히는 데는 한 시간 가까이 걸려서, 미리 전화해 달라는 식당이 많다. 그 전화로, 또는 네이버 지도에 올라온 식당 정보로 음식 가격과 자릿세 여부, 당일 영업시간을 확인해 두자. 피해야 할 실수는 빈 평상을 공공 벤치로 여기고 그 위에 도시락을 펼쳐 놓는 것이다. 누군가 달리 말해 주기 전까지는, 신발을 신은 채 가장자리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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