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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배가 끊긴 뒤에도 발효를 멈추지 않은 금강의 포구
냄새가 먼저 온다. 첫 가게가 보이기 한 블록 전부터다. 차고 맑은 소금물 냄새, 상한 무언가보다는 썰물 때의 포구에 가까운 냄새다. 그러고 나면 간판이 시작된다. 강경의 길을 따라 하나, 또 하나, 모두 같은 두 글자를 달고 있다. 젓갈, 소금에 절여 삭힌 해산물이다. 냉장 유리 진열대 뒤의 여인이 분홍빛 새우 한 마리를 꽂은 이쑤시개를 내밀고, 기다린다.
배 없는 포구
강경은 충청남도 논산에 속한 작은 고장으로, 금강이 굽이도는 자리에 앉아 있다. 쌀이 나는 들판에 닿을 만큼 내륙이면서, 한때는 밀물이 짐 실은 배를 상류로 밀어 올려 줄 만큼 바다와 가까웠다. 서해에서 고깃배가 올라오고 내륙에서 상인들이 내려왔으며, 그 사이에 선 장은 대구, 평양과 함께 조선 후기의 큰 시장으로 흔히 꼽힌다.
이제 배는 오지 않는다. 철도가 먼저 화물을 가져갔고, 훗날 강 하구 가까이에 들어선 하굿둑이 물길을 막았다. 이 고장에 남은 것은 실용적인 이유에서 생긴 습관이었다. 저녁까지 생물로 팔지 못한 생선은 소금에 들어갔다. 지금 해산물은 서해안에서 도로를 타고 들어오고, 강경은 예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한다. 부둣가가 아니라 저온 저장고에서.
달로 읽는 새우
젓갈 가게는 강경젓갈시장 일대에 모여 있다. 역에서 강 쪽으로 평지를 걸어가면 닿는다. 가게 대부분은 길에서 보는 것보다 안이 깊어서, 앞쪽에 시식대가, 뒤쪽에 저장 공간이 있다. 지나가는 동안 상인들은 같은 말을 건넨다.
맛보고 가세요.
가기 전에 한 점 맛보라는 말이다. 빈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뜻이고, 여기서는 사기 전에 먼저 맛보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새우젓부터 시작하자. 라벨 읽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이름은 새우를 잡은 음력 달을 가리킨다. 오젓은 음력 오월 새우다. 유월에 잡은 육젓은 살이 더 통통하고 빛깔이 옅으며, 값도 그만큼 나간다. 가을에 잡는 추젓은 알이 더 잘고, 많은 집에서 늦가을 김장용으로 넉넉히 사 가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란히 놓고 맛보면 차이는 미묘하지 않다. 육젓은 짠맛 뒤로 단맛이 돌고, 새우가 이 사이에서 제 모양을 지킨다.
진열대의 나머지는 어휘다. 명란젓은 막에 싸인 그대로의 명태 알이고, 창난젓은 쫄깃하고 고춧가루로 붉으며, 오징어젓은 오징어를 채 썬 것이다. 젓갈은 무게로 팔고 뚜껑 달린 플라스틱 통에 담아 준다. 가격은 통 크기별로 써 붙여 두거나 불러 주는데, 등급과 철에 따라 달라지니 국자가 들어가기 전에 물어보자.
양념으로 차린 한 끼
시장 근처 여러 식당에서 젓갈백반을 내는데, 젓갈정식이라고 적어 둔 곳도 있다. 쟁반에는 열두 가지가 넘는 작은 종지가 오르고, 종지마다 서로 다른 젓갈이 한 숟갈씩 담긴다. 곁에는 밥과 찌개, 그리고 입을 쉬게 해 줄 담백한 채소 반찬 몇 가지가 놓인다. 한 통 값을 치르기 전에 내 입맛에 맞는 것을 알아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처음 온 사람의 실수는 양이다. 젓갈은 어쩌다 반찬으로 차려질 뿐인 양념이다. 옆자리 사람들은 손톱만큼 덜어 밥 한 술에 올리고, 네모난 김이나 찐 양배추 잎에 통째로 싸 먹곤 한다.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혹독하다. 정식은 2인 이상만 주문받는 집도 있으니, 혼자 여행한다면 자리에 앉기 전에 문간에서 물어보는 편이 좋다.
벽돌, 나무, 그리고 한약방의 위층
포구를 거쳐 간 돈은 건물을 남겼고, 그중 몇 채가 서로 몇 골목 거리 안에 살아남았다.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이 가장 찾기 쉽다. 창이 높은 붉은 벽돌 은행 건물이다. 지금은 강경역사관으로 쓰이며, 장사가 성하던 시절의 사진과 살림살이를 소박하게 전시한다. 작은 공립 박물관은 휴관일이 제각각이니, 오전 일정을 여기에 맞추기 전에 논산시 관광 안내 페이지에서 확인하자.
몇 골목 더 가면 구 강경노동조합 건물이 있다. 배에서 짐을 부리던 사내들을 위한 나지막한 목조 회관이다. 옛 아랫장터 근처에는 구 연수당 건재 약방이 서 있다. 기와지붕을 인 2층 목조 상점으로, 위층 외벽은 판자로 마감했다. 어느 것도 웅장하지 않다. 그래도 걸어가 볼 만한 까닭은 이들이 평범한 상업 건물, 대개 가장 먼저 사라지는 종류의 건물이기 때문이다.
북쪽 끝의 언덕
옥녀봉은 산이라 하기도 어려운 언덕이다. 읍내 북쪽 가장자리에 불거진 숲 우거진 바위 마디로, 돌계단을 따라 몇 분이면 오른다. 꼭대기에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복원한 봉수대가 있고, 아래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풍경이 있다. 넓고 누런 곡선을 그리며 미끄러져 가는 금강, 양쪽 강변의 논 평야, 둑에 바짝 붙은 읍내의 낮은 지붕들.
언덕 아래에서는 둑길이 물을 따라 황산대교 쪽으로 이어진다. 다리 근처, 강가에서 조금 물러난 자리에 조선 시대의 작은 정자 두 채, 임리정과 팔괘정이 있다. 선비들이 한때 같은 강을 마주하고 앉았던 곳이다. 늦은 오후가 어울린다. 빛이 건너편 강둑 위로 낮게 들어오고, 길에는 자전거 타는 이들과 이따금 낚시꾼만 남는 때다.
가는 길, 그리고 들고 오는 길
강경역은 호남선에 있다. 이 노선의 일반열차는 서울에서는 용산역, 대전에서는 서대전역에서 출발한다. 더 빠른 열차는 노선을 따라 바로 위쪽 고장에 있는 논산역에 서는 경우가 많고, 거기서부터는 일반열차나 버스, 택시로 나머지 구간을 간다. 시간표와 운임은 코레일 누리집과 앱에 있으며, 주말 좌석은 미리 예매해 두는 편이 좋다. 읍내는 평탄하고 작아서 하루면 걸어서 다 돌아볼 수 있다.
가을이 성수기다. 김장거리를 사러 집집이 찾아오고, 그즈음 젓갈 축제도 열리는데 날짜는 해마다 논산시가 공지한다. 겨울이나 봄의 평일은 한결 차분하고, 시식도 느긋하다.
마지막 문제는 운반이다. 포장해 달라고 하면 가게에서는 대개 아이스팩과 함께 스티로폼 상자에 통을 담아 주고, 국내 주소로 택배를 보내 주는 곳도 많다. 하지만 젓갈은 날것이고, 물기가 많고, 냄새가 진하며, 배낭 속에서 보내는 더운 오후를 용서하지 않는다. 피해야 할 실수는 들뜬 마음에 큰 통부터 사 놓고, 항공사가 실어 주는지, 본국 세관이 발효 수산물을 들여보내 주는지를 뒤늦게 확인하는 일이다. 조금만 사서 여행 중에 먹고, 나머지는 계산대에 서기 전에 정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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