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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에서 절이 된 서울의 옛 연회장, 그리고 그 절이 앉은 언덕
성북동 언덕 위쪽, 주택가 골목의 수수한 대문 너머에 길상사가 있습니다. 이 절은 원래 서울에서 가장 이름난 요정, 곧 손님을 받아 은밀히 연회를 열던 집 가운데 하나인 대원각이었습니다. 주인 김영한이 이 터를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고, 1997년 절로 문을 열었습니다. 전각들은 예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이제 그 안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옛 건물이 아직 들려주는 것
배치를 보면 내력이 드러납니다. 작은 목조 전각들이 언덕을 따라 서로 떨어져 앉아 있습니다. 한 무리가 식사하는 동안 옆 무리가 보이지 않도록 지은 것입니다. 지금 이 전각들은 참선방과 스님들의 거처로 쓰이는데, 서로 간의 거리도 예전 그대로입니다. 수행 공간이라고 표시된 곳에는 들어가지 말아 달라는 안내문이 있고, 대부분의 방문객은 이를 지킵니다.
대웅전(극락전) 가까이에는 자비의 보살 관음을 새긴 하얀 입상이 서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의 작품입니다. 길고 부드러운 선이 성모 마리아상을 많이 닮았습니다. 우연이 아니라, 두 신앙이 돌 위에서 조용히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입니다.
찾아가는 법
입장료는 없으며, 이른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누구나 들어가 경내를 거닐 수 있습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면 금방 언덕 위에 닿습니다. 걸어가면 20분쯤 걸리고, 가는 내내 오르막입니다. 가장 한적한 때는 단체 관광객이 오기 전인 평일 오전입니다.
목소리는 낮추고, 신발을 벗으라는 댓돌 앞에서는 신발을 벗고, 기도하는 사람은 사진에 담지 마세요. 법정 스님은 덜 가지는 삶에 대해 글을 썼고, 절도 그 정신대로 꾸며져 있습니다. 벤치는 소박하고 그마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말없이 머물다 가는 것이 이곳의 예의입니다.
내려오는 길의 차 한 잔
같은 비탈 조금 아래에는 수연산방이 있습니다. 소설가 이태준이 살던 1930년대 한옥으로, 지금은 찻집이 되었습니다. 예약 없이 들를 수 있고, 대추차와 모과차를 내며, 낮은 탁자 너머로 작은 마당이 내다보입니다. 절에 다녀온 뒤, 언덕을 등지고 오후 햇살이 마룻바닥으로 옮겨 앉을 무렵 들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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