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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주소 읽는 법: 길, 번길, 그리고 101동
출국 전날 밤, 게스트하우스에서 메시지가 온다. 한국어 한 줄, 영어 한 줄, 그리고 현관 비밀번호. 영어 쪽은 수수께끼처럼 읽힌다. 도로 이름 하나, 숫자 하나, ‘gil’이 붙은 또 다른 숫자, 그리고 괄호 속 단어 하나. 서울역 앞 택시 승강장에서 기사는 영어 주소를 보더니 고개를 젓고, 한국어를 보여 달라며 휴대폰을 가리킨다. 한국 주소는 어렵지 않다. 다만 아무도 방문객에게 설명해 주지 않는 논리를 따를 뿐이다. 그 논리를 읽을 줄 알게 되면, 숙소를 두 블록 앞에 두고 헤매는 일은 더 이상 없다.
같은 문, 두 개의 주소
한국에서는 두 가지 주소 체계가 나란히 쓰인다. 도로명주소는 도로 이름과 그 도로 위에서 건물이 놓인 위치를 알려준다. 그보다 오래된 지번주소는 ‘동’이라 부르는 동네 이름과 토지의 필지 번호를 알려준다. 이 번호는 건물이 어느 땅 위에 서 있는지를 말해 줄 뿐, 건물이 어느 길을 바라보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예약 플랫폼과 배달 앱, 공공기관 서류는 도로명주소를 쓴다. 반면 가게 계산대 위의 택배 송장이나 동네 식당의 손글씨 간판, 혹은 집안 어른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지번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동네 이름도 여전히 살아 있다. 도로명주소 끝에는 흔히 (연남동)처럼 괄호 속에 동 이름이 붙고, 때로는 건물 이름까지 함께 적힌다. 여전히 동네 단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도시의 더 오래된 지층은 역 이름에도 남아 있다. 종로3가와 을지로3가의 ‘가’는 긴 도심 도로를 구간별로 나눠 센 것이다. 서울 도심을 나누던 옛 방식에서 온 이름으로, 그 역에서 환승할 때마다 마주치게 된다.
대로, 로, 길: 도로의 크기는 이름에 있다
도로 이름의 끝부분은 그 길이 얼마나 큰지를 알려준다. 대로는 광화문 앞을 지나는 세종대로처럼 8차로 이상의 큰길이다. 로는 2차로에서 7차로 사이의 도로다. 길은 그보다 작은 모든 길을 가리킨다. 실제로는 인도가 없는 경우가 많고, 길 절반을 오토바이가 가로막고 선 좁은 길이나 골목을 뜻한다.
옆길은 갈라져 나온 큰길의 이름 뒤에 번호를 붙여 이름을 짓는다. 예컨대 자하문로7길은 자하문로에서 갈라진 골목이다. 이 번호는 큰길의 어느 지점에서 골목이 갈라지는지를 대략 알려주며, 홀수와 짝수는 서로 반대편에 놓인다. 부산과 경기도의 여러 도시에서는 ‘번길’도 볼 수 있는데, 골목이 갈라지는 모퉁이 건물의 번호를 따서 길 번호를 매긴 것이다. 어느 쪽이든 실용적인 결론은 같다. 주소에 ‘길’이 들어 있다면 마지막 구간은 대개 걸어서 가야 한다는 뜻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후진으로 빠져나오는 택시를 지켜보느니, 큰길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는 편이 나을 때가 많다.
거리를 재는 숫자
건물번호는 도로의 한쪽 끝에서 시작해 길을 따라갈수록 커진다. 번호가 커지는 방향으로 걸을 때 왼쪽이 홀수, 오른쪽이 짝수다. 번호는 위치에 따라 약 20미터 간격으로 매겨지므로, 건물번호에 10을 곱하면 도로 시작점에서부터의 대략적인 거리가 미터 단위로 나온다. 120번은 시작점에서 1킬로미터 남짓 들어간 곳이고, 121번은 대략 그 길 건너편에 있다. 번호가 건너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4번과 20번 사이에 폭이 넓은 건물이 있다면, 그 사이 번호를 그 건물이 모두 차지했을 뿐이다.
교차로에서는 파란색 도로명판을 찾자. 도로 이름이 한글과 영어로 적혀 있고, 화살표와 함께 그 방향의 건물번호 범위가 표시돼 있다. 모퉁이에 서서 내 번호를 표지판과 비교하고, 번호가 이어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5초면 충분하고, 지도 핀이 어긋날 때 흔히 벌어지는 블록 한 바퀴 헛걸음을 덜어 준다.
문 옆의 번호판, 그리고 몇 층인가
제대로 된 구간에 들어섰다면 입구 근처의 작은 판, 건물번호판을 찾아보자. 도로명과 건물번호가 적혀 있고, 아래에 영어가 병기된 경우도 많다. 가장 믿을 만한 확인 수단이다. 입주한 가게가 바뀌면 건물 이름은 달라질 수 있어도 번호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음부터 주소는 수직으로 이어진다. 층은 건물의 층수를, 호는 호실을 가리키니, 2층 201호라면 2층에 있는 201호실이다. 지상층은 미국식으로 1층부터 세기 때문에, 영국식 층수에 익숙한 방문객은 여기서 종종 헷갈린다. 지하층은 엘리베이터 버튼에 보통 B1, B2로 표시된다. 작은 식당이나 연습실이 이런 층에 많은데, 입구가 건물 정면이 아니라 옆쪽의 좁은 계단 아래에 있는 경우가 많다.
101동 1203호: 단지 안에서 집 찾기
숙소로 빌리는 집은 대개 단지 안에 있다. 출입문 안쪽에 똑같이 생긴 건물들이 늘어선 아파트 단지다. 여기서 ‘동’은 동네가 아니라 건물을 뜻하는데, 이 체계 전체에서 가장 흔한 혼란이 바로 여기서 생긴다. 101동은 101번 건물이고, 그 번호는 보통 정문에서도 보이도록 벽면 높은 곳에 큼직하게 쓰여 있다. 1203호는 12층의 03호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보통 두 단계를 거친다. 먼저 단지 출입문을 지나는데, 그 옆에는 흔히 경비실이 있다. 그다음 각 동의 공동현관에 이르면 키패드가 기다린다. 호스트가 알려 준 비밀번호는 별표(*)나 샵(#) 키로 끝나기도 하는데, 메시지에는 그 얘기가 빠져 있을 수 있다. 큰 단지라면 정문에서 해당 동까지 몇 분은 걸어야 하고, 지상에 차가 아예 다니지 않는 단지도 있다. 정문에 있는 안내도에서 동 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101동 앞에 세워 주세요.
‘101동 앞에 세워 주세요’, 이 한 문장은 택시가 단지 정문으로 들어설 때를 대비해 준비해 둘 만하다. 전체 주소와 함께 화면에 띄워 보여 주면, 기사는 정문 앞이 아니라 정확한 동 앞으로 차를 몬다.
도착하기 전에, 그리고 택시 앞에서
호스트나 호텔에 한글 주소를 요청하자. 가능하다면 두 체계의 주소 모두와 건물 이름, 가장 가까운 지하철 출구까지 받아 두는 것이 좋다. 로마자 표기를 입력하지 말고, 한글 주소를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맵에 그대로 붙여 넣자. 로마자 표기는 제각각이고(Jongno 또는 Chongno, Sinchon 또는 Shinchon), 이름이 같은 도로가 여러 도시에 있다. 예컨대 중앙로는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정부의 공식 도로명주소 검색 서비스는 한글과 영문 사이, 그리고 두 주소 체계 사이를 변환해 주므로, 주소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면 이용해 보자.
‘길’이나 단지 주소라면, 처음 찾아갈 때는 되도록 해가 있을 때 도착하자. 한낮에는 쉽게 읽히던 골목도 건물번호판이 어둠에 묻히는 밤이 되면 훨씬 어려워진다. 피해야 할 실수는 영어 주소만으로 찍힌 지도 핀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핀은 큰길 위에, 단지 정문에, 혹은 아예 다른 구에 떨어질 수 있다. 택시에 타기 전, 화면 속 괄호 안의 동 이름이 호스트가 알려 준 것과 같은지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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