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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저우에서의 이틀: 성벽 도시, 초나라 비단, 그리고 제방 아래의 탑
이른 아침, 징저우 동쪽 해자의 물은 아직 잔잔하다. 성문 누각인 빈양러우(宾阳楼)가 수면에 거꾸로 비친다. 한 남자가 물가에 접이식 의자를 펴고 낚싯대를 꺼낸다. 그 위 벽돌 성벽에서는 그날의 첫 산책객들이 뒷짐을 진 채 지나간다. 징저우(荆州)는 우한과 싼샤 사이를 오가는 여행자 대부분이 기차 창밖으로 스쳐 보내는 후베이성의 도시다. 그래도 이곳의 성벽이라면 기차에서 내릴 이유로 충분하다.
동문에서 시작하는 성벽 걷기
징저우 고성벽(荆州古城墙, Jīngzhōu Gǔchéngqiáng)은 옛 시가지를 10킬로미터 남짓 둘러싸고 있다. 사실 이 성벽은 세 가지가 하나로 겹친 구조다. 흙을 다져 쌓은 토성, 그 앞에 덧댄 벽돌 외벽, 그리고 바깥의 해자. 발밑 벽돌 대부분은 명·청 시대에 훨씬 오래된 기초 위로 쌓아 올린 것이다. 걸으면서 바닥 포장과 성가퀴를 눈여겨보자. 이따금 글자가 찍힌 벽돌이 눈에 띄는데, 누가 어디서 구웠는지를 남긴 기록이다.
빈양러우 아래 동문인 인빈먼(寅宾门)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걸어 보자. 가는 길에 성벽 둘레를 구간별로 나누는 성문 누각들을 차례로 지나게 된다. 남쪽에는 난지먼(南纪门)이 있고, 북쪽의 궁지먼(拱极门)은 차오쭝러우(朝宗楼) 아래에 자리한다. 옛날 도읍으로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던 곳이다. 성벽 위는 넓고 울퉁불퉁하며 그늘이 거의 없다. 현지 사람들이 새벽이나 해가 진 뒤에 이곳을 걷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성벽 안에서, 박물관의 속도로
징저우는 고대 초(楚, Chǔ)나라의 중심지였고, 징저우 박물관(荆州博物馆)에는 이 일대 무덤에서 나온 유물이 모여 있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칠기, 청동 그릇, 그리고 마산(马山)의 초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비단을 볼 수 있다. 비단은 어둑한 조명 아래 전시되어 있고, 수놓인 용과 봉황은 천천히 한 바퀴 더 돌며 볼 만하다. 별도 전시관에는 펑황산(凤凰山)에서 발견된 전한 시대의 시신이 있다. 많은 관람객이 이곳을 건너뛰는데, 건너뛰어도 본 전시관을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박물관에서 옛 시가지까지는 골목길로 쉽게 걸어갈 수 있다. 도교 사원 단지인 카이위안관(开元观)이 성벽 안에 있다. 명나라 재상 장거정(张居正)의 저택도 성안에 있는데, 상당 부분은 옛 터 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남문 근처의 관우 사당 관제묘(关帝庙)는 징저우를 지키다 끝내 잃은 삼국시대의 장수를 기린다. 그 이야기는 작은 방심이 큰 결과를 부를 때 지금도 사람들이 입에 올리는 성어로 남아 있다.
Dàyì shī Jīngzhōu 大意失荆州 — 방심하다 징저우를 잃다.
성문과 성문 사이, 이 도시의 맛
징저우가 가장 자랑하는 음식은 위가오(鱼糕, yúgāo)다. 민물고기 살을 곱게 찧어 쪄 낸 어묵으로, 하얀 덩어리로 썰어 내며 윗면에는 얇은 노란 달걀 층이 덮여 있다. 이 지역에서는 위가오가 빠진 잔칫상을 제대로 차린 상으로 치지 않는다. 성안의 작은 식당들은 이것을 썰어 국물에 담거나 채소와 함께 볶아 내는데, 1인분이면 두 사람이 먹기에 넉넉하다.
아침 식사나 성문 사이의 간식으로는 이웃 고장 궁안(公安)에서 유래했다는 납작한 빵, 궈쿠이(锅盔, guōkuī)를 찾아보자. 제빵사가 반죽을 뜨겁게 달군 통 화덕 안쪽 벽에 철썩 붙였다가, 표면이 부풀어 오르면 집게로 건져 낸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것도 있고, 다진 돼지고기와 파를 채운 것도 있다. 따뜻한 계절이면 후베이 사람들이 사랑하는 민물가재, 샤오룽샤(小龙虾, xiǎolóngxiā)가 저녁 거리를 점령하고, 테이블이 인도까지 밀려 나온다. 무게와 소스를 골라 주문하는 방식이니, 웍에 들어가기 전에 한 접시 가격이 어떻게 매겨지는지 꼭 물어보자.
사스, 그리고 제방이 필요한 강
양쯔강은 성벽에서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옛 항구 지구 사스(沙市)를 지나 흐른다. 이 구간의 강은 징장(荆江, Jīngjiāng)이라 불린다. 물길이 워낙 굽이치고 툭하면 범람하는 탓에, 강둑은 수 세기에 걸쳐 높이 쌓이며 징장 대제방(荆江大堤)이 되었다. 제방 위를 걸으면 한쪽으로는 바지선이, 다른 쪽으로는 지붕들이 내려다보인다. 강은 생각보다 높은 곳에서 흐른다.
万里长江,险在荆江。(Wànlǐ Chángjiāng, xiǎn zài Jīngjiāng — 만 리 장강에서 가장 험한 곳은 징장이다.)
제방 위에는 명나라 때 세운 벽돌탑, 완서우 보탑(万寿宝塔)이 서 있다. 탑 둘레로 제방을 거듭 높여 쌓은 탓에 이제 맨 아래층은 산책로보다 낮아졌고, 기단까지 가려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이곳 강의 역사를 이만큼 한눈에 보여 주는 장면도 없다. 늦은 오후에 가 보자.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과 연 날리는 사람들이 제방을 채우고, 햇빛은 수면 위로 낮게 깔린다.
가는 법, 그리고 이틀의 속도
징저우역(荆州站)은 우한과 이창을 잇는 고속철도 노선에 있다. 한커우(汉口)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편에 따라 한 시간 남짓 걸리고, 이창둥(宜昌东)역에서 오는 열차도 있다. 중국 철도 예매 시스템에서 여권으로 표를 살 수 있다. 역에서 성벽까지는 택시나 시내버스로 금방이다. 사스까지는 이동 시간이 더 걸리니, 일정 끝에 끼워 넣기보다 반나절을 따로 떼어 두자.
이 코스는 봄과 가을에 걷기 좋다. 탁 트인 성벽 위에서 여름 더위는 견디기 힘들다. 성벽은 여러 성문에서 입장권을 사서 오를 수 있다. 박물관은 사전 예약을 요구할 수 있으니 공식 채널을 확인하고 여권을 챙기자. 운영 시간과 현재 요금은 성문 현장이나 징저우 공식 관광 사이트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피해야 할 실수는 성벽을 끊김 없이 한 바퀴 이어진 길로 여기는 것이다. 일부 구간은 보수 공사로 닫히기도 하니, 이름 붙은 성문과 성문 사이를 단위로 걷는 계획을 세우고, 막힌 구간이 있다면 택시로 건너뛸 생각을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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