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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룽진, 영화에서 이름을 얻은 후난의 폭포 마을
돌길 아래쪽 끝, 한 여인이 물이 담긴 대야에서 희끄무레한 네모 조각들을 건져 그릇에 쏟고, 고추와 잘게 썬 신 무, 국물 한 숟갈을 얹어, 당신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를 채 마치기도 전에 카운터 너머로 내민다. 머리 위 간판에는 영화 제목이 적혀 있다. 옆집 간판도 마찬가지다. 후난 서부 산간의 푸룽진(芙蓉镇)에서 그 영화는 줄 선 사람들 대부분보다 나이가 많고, 영화를 찍은 마을은 이제 그 제목으로 불린다.
영화의 이름을 받은 강변 포구
이곳은 오랜 세월 왕춘(王村)이었다. 투자족과 먀오족의 땅 샹시(湘西), 융순현(永顺县)의 유수이(酉水)강에 면한 나루였다. 1980년대 중반 셰진 감독이 촬영팀을 이끌고 이곳에 와 《부용진》을 찍었다. 구화의 소설이 원작으로, 쌀두부를 파는 여인이 작은 풍요를 빼앗겼다가 고된 20년에 걸쳐 천천히 되찾는 이야기다. 소설 속 마을은 지어낸 곳이고, 책은 그 무대를 훨씬 남쪽, 후난이 광둥·광시와 만나는 언저리에 둔다. 촬영팀은 원하던 풍경을 다른 강 위의 젖은 돌길에서 찾아냈다.
찾아오는 이들이 실제 마을 대신 영화 속 마을을 묻기 시작했고, 이름은 결국 공식 지명이 되었다. 기차역도, 도로 표지판도, 매표소도 이제 푸룽이라고 말한다. 왕춘은 현지 사람들의 말씨에, 그리고 일부 지도가 여전히 폭포에 붙여 두는 이름에 남아 있으니 두 이름을 모두 알아 두면 도움이 된다.
카메라가 쓴 것, 남기고 간 것
주 촬영지는 판석이 깔린 거리, 우리스반제(五里石板街, 5리 돌판길)였다. 강가 부두에서 시작해 길고 얕은 계단으로 마을을 가로질러 올라간다. 판석은 청석으로, 한가운데가 움푹 닳아 있고 비가 오면 미끄럽다. 비는 잦다. 양옆의 목조 점포들은 문지방 홈에 널빤지를 끼워 문을 닫는다. 이른 아침이면 그 널빤지를 한 장씩 들어내 벽에 기대어 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길 중턱에는 조각된 석조 패방(牌坊)이 거리를 가로질러 서 있다. 눈에 보이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물건 같지만, 현지에서는 촬영을 위해 세웠다가 끝내 철거하지 않은 소품이라고들 한다. 영화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면, 새벽에 두 사람이 대빗자루로 이 돌을 쓰는 대목이 이 거리에서 촬영됐다. 스틸 사진이 여러 가게에 걸려 있지만 그 자리를 못 박아 알려 주는 표지판은 없고, 거리는 그런 것 없이 더 잘 읽힌다.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문하는 쌀두부
이야기의 한가운데 놓인 음식은 미더우푸(米豆腐)인데, 콩은 들어가지 않는다. 쌀을 불려 걸쭉하게 갈고, 알칼리수를 조금 넣어 굳을 때까지 익힌 다음,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깍둑썰어 누군가 주문할 때까지 물에 담가 둔다. 조각은 옅은 노란빛을 띠고 숟가락에 부서질 만큼 부드러우며, 끝에 광물질 같은 맛이 감돈다. 고명은 그 맛에 답하려고 있는 것이다. 고추기름, 쏸뤄보(酸萝卜, 새콤하게 절인 무), 파, 그리고 묽은 국물 한 국자.
아랫길의 여러 노점이 저마다 영화 속 바로 그 집이라고 내세운다. 여행자가 가려낼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굳이 가려낼 이유도 없다. 대야를 가장 자주 채우는 가게를 고르고, 주문하기 전에 벽에 걸린 가격표를 찾아보고, 순하게 먹고 싶다면 말하자. 기본은 그 반대를 전제로 하니까. 더 올라가면 문간 위로 라러우(腊肉, 훈제 돼지고기)가 덩이째 걸려 있고, 몇몇 가게에서는 투자족이 기하학 무늬를 촘촘하게 짜 넣은 직물 시란카푸(西兰卡普)를 판다.
집들 아래의 폭포
이곳의 물은 마을 곁을 지나가기만 하지 않는다. 마을을 뚫고 지나간다. 개울 하나가 마을 한복판의 절벽에서 넓은 두 단으로 떨어져 유수이강에 닿고, 양쪽 가장자리 너머로는 투자족의 기둥 받친 목조 가옥 댜오자오러우(吊脚楼)가 허공으로 내밀어 지어져 있다. 안내판마다 되풀이되는 마을의 구호는 이곳을 폭포 위에 걸린 천년 고진이라 부른다.
挂在瀑布上的千年古镇。
계단식 길이 절벽을 내려가 떨어지는 물 뒤편을 지난다. 그곳은 바위 처마가 낮고 바닥은 젖어 있으며 대화가 멎는다. 폭포 옆에는 투왕싱궁(土王行宫)이 서 있는데, 수백 년 동안 이 지역을 다스린 세습 수장 토사(土司)의 별궁으로 소개된다. 협곡 건너편의 전망 테라스와 발코니 딸린 호텔들은 최근에 생긴 것이고, 어두워지면 절벽에 색이 바뀌는 조명이 켜진다. 수량은 계절을 따른다. 여름비 뒤에는 묵직하고, 건조한 겨울철에는 눈에 띄게 가늘어진다.
부두에 남은 더 오래된 이야기
영화가 마을에 준 것은 이름이지 나이가 아니다. 풍경구 안 민속박물관에는 시저우 동주(溪州铜柱)가 서 있다. 사람 키보다 큰 팔각 청동 기둥으로, 10세기에 주조되었고 초나라와 현지 수장들 사이에 맺은 화친의 조건이 새겨져 있다. 전시관이 늘 거리와 같은 시간표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니, 믿고 일정을 짜기 전에 매표소에 물어보자.
돌길 끝자락의 부두가 나머지를 설명해 준다. 유수이강은 위안장(沅江)으로 흘러들고, 왕춘은 산에서 내려온 화물이 배에 실리던 곳이었다. 가게가 늘어선 긴 계단길은 물길 운송이 남기고 간 자취다. 하루 더 여유가 있는 여행자라면 융순현의 다른 곳에 있는 토사의 옛 치소 유적, 세계유산 목록에 오른 라오쓰청(老司城)까지 발길을 이을 수 있다.
가는 길, 그리고 거리를 걸을 시간
푸룽진역(芙蓉镇站)은 장자제–지서우–화이화 고속철도(张吉怀高铁) 노선 위, 장자제시역(张家界西)과 펑황구청역(凤凰古城) 사이에 있다. 역은 옛 마을 바깥에 있고, 보통 셔틀버스와 택시가 도착 승객을 맞는다. 저녁에는 편수가 줄 수 있으니 12306이나 역에서 시간을 확인하자. 옛 마을은 입장권이 필요한 풍경구다. 현재 입장료와, 표 한 장으로 해가 진 뒤 재입장이 되는지를 매표소나 풍경구 공식 위챗 계정에서 확인하고, 유인 창구에 낼 여권을 챙기자.
일정이 허락한다면 하룻밤 묵자. 단체 관광객은 늦은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아랫길을 메운다. 이튿날 아침 식사 무렵이면 거리는 널빤지를 들어내는 사람들과 첫 쌀두부 대야의 차지가 되는데, 지금의 마을이 영화 속 새벽에 가장 가까워지는 때다. 젖은 판석에 대비해 접지력 좋은 신발을 챙기자. 흔한 실수는 푸룽을 장자제와 펑황 사이에 두 시간 들르는 곳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얻는 것은 폭포 사진 한 장과 서서 먹는 한 그릇이고, 놓치는 것은 영화가 제 것으로 만든 그 시각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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