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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하이가 된 장먼: 《광표》가 빌려 쓴 치러우 거리를 걷다
장먼강이 묽게 우린 차 빛깔로 변하는 시간이면, 강둑의 회랑 아래에는 으레 누군가 서서 휴대폰을 들어 올리고 드라마 촬영이 남기고 간 간판을 찍고 있다. 바로 옆 철물점은 밧줄과 경첩, 플라스틱 대야를 팔고, 계산대 뒤의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이 거리는 꽤 오래전부터 두 곳을 동시에 살아 왔고, 이제는 그 상태에 익숙해졌다.
다른 도시를 연기한 도시
징하이(京海)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생선 장수가 스무 해에 걸쳐 올라서는 과정을 따라가는 범죄 드라마 《광표》(狂飙, Kuangbiao)가 지어낸 해안 도시이고, 그 거리의 대부분은 주장 삼각주 서쪽에 자리한 장먼(江门)의 것이다. 제작진은 목공 작업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2000년으로 통할 만한 곳을 원했다. 옛 상업 중심지인 펑장구(蓬江区)가 그랬다.
장먼은 우이(五邑) 지역의 중심 도시다. 우이는 대대로 사람들을 해외로 떠나보내고, 그들이 부쳐 온 돈을 벽돌과 콘크리트로 돌려받은 다섯 개 현을 가리킨다. 그 돈이 치러우(骑楼)를 세웠다. 위층이 기둥에 얹혀 보도 위로 튀어나온 회랑식 상점 주택이다. 이곳의 치러우 상당수는 한 번도 전시용 명소로 꾸며지지 않았다. 그저 쓰이는 채로 남았고, 카메라가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京海是虚构的,骑楼是真的。
창디와 서른세 개의 장터 골목
강변 구간에는 창디 펑마오제(长堤风貌街)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창디는 ‘긴 제방’이라는 뜻이다. 한쪽으로는 회랑이, 다른 쪽으로는 강이 이어지고, 회반죽 박공에는 무역 상회의 이름이 돋을새김으로 남아 있다. 어떤 것은 또렷하고, 어떤 것은 닳아서 흔적만 짐작될 뿐이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땅이 쉬딩(墟顶)을 향해 높아진다. ‘장터 꼭대기’라는 뜻으로, 이 고장의 정기 시장이 처음 선 언덕이다. 비탈을 거미줄처럼 엮은 골목들은 이제 싼스싼쉬제(三十三墟街), 곧 서른세 개의 장터 거리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소개된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고향 동네인 ‘옛 공장 거리’ 주창제(旧厂街, Jiuchang Jie)는 이 골목 여럿을 이어 붙여 만든 곳이다. 한 골목에서 찍은 것이 아니다. 방문객들은 지금도 스크린숏을 들고 와 문간에 대어 본다. 제작진이 달았던 가게 간판 글씨 일부는 그대로 남거나 포토 스폿으로 다시 만들어졌지만, 무엇이 걸려 있는지는 세입자가 바뀔 때마다 달라진다. 잘 알려진 모퉁이들은 구에서 세운 안내 지도판에 표시되어 있다.
세트와 거리를 구별하는 법
손을 댄 구간은 지나치게 가지런해서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다. 서체도 하나, 시대도 하나, 페인트도 고르게 낡았다. 진짜 거리의 결은 더 어수선하다. 기둥 면에는 붉은 글씨로 손수 쓴 상호가 남아 있고, 에어컨 받침대는 저마다 다른 속도로 녹슬며, 누군가의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는 나무 사다리가 기대어 있다. 강둑을 따라 늘어선 가게들은 낚시 도구와 밧줄, 건어물을 취급하고, 카메라가 아니라 단골을 상대로 장사한다.
음식에도 같은 두 겹이 있다. 극 중 인물이 주문하는 족발 국수 주자오몐(猪脚面)은 드라마가 방영된 뒤 이 일대 간판에 등장했고, 한 그릇으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고장이 물려받은 맛은 따로 있다. 와이하이몐(外海面)은 시내 강변 마을의 이름을 딴 가는 달걀 면으로, 대개 돼지기름과 간장에 국물 없이 비벼 낸다. 거위 구이는 신후이구(新会区)의 소도시 구징(古井) 방식으로 나온다. 묵힌 귤껍질인 신후이 천피(新会陈皮)는 연도 라벨이 붙은 유리병에 담겨 팔리고, 차에 우려지거나 단팥죽에 들어가 뭉근히 끓여진다.
치밍리, 언덕 위의 더 조용한 골목
강둑에서 차로 잠깐이면 닿는 치밍리(启明里)는 해외에서 돌아온 가족들이 지은 벽돌집이 오밀조밀 모인 동네다. 골목이 좁아서 우산 쓴 두 사람이 마주치면 서로 비켜 설 궁리를 해야 한다. 제작진은 이곳에서도 촬영했고, 그 뒤로 몇몇 집에는 카페와 작은 게스트하우스, 공예품 가게가 들어섰다. 나머지는 여전히 살림집이어서, 대나무 장대에 빨래가 널려 있고 문턱 앞에는 자전거가 가로놓여 있다.
현관문이 곧바로 거실로 열리는 집이 많으니, 사진은 외관만 찍고 집 안은 그대로 두자. 나이 든 주민들은 이 지역의 쓰이(四邑) 말로 이야기하는데, 광저우에서 온 광둥어 화자도 알아듣기 어려워할 때가 많다. 대부분의 가게에서 주문하고 길을 묻는 데는 표준 중국어면 충분하고, 나머지는 번역 앱이 메워 준다.
카이핑에 남은 더 오래된 영화의 층
장먼은 이 드라마보다 훨씬 전부터 촬영지였다. 차로 서쪽으로 한 시간쯤 떨어진 현급 시 카이핑(开平)에는 강변 마을 츠칸(赤坎)이 탄장(潭江)을 따라 회랑을 늘어세우고 있고, 그 거리는 《일대종사》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민국 시대 남방 도시를 대신했다. 오늘의 츠칸은 그 제작진들이 만났던 마을과는 사뭇 다른 곳이다. 마을을 통째로 비우고 다시 지은 뒤, 복원한 외관과 새 포장, 야간 조명을 갖춘 관리형 역사 문화 지구로 다시 문을 열었다. 가로 구조는 그대로이고 표면은 재건된 것이니, 그런 곳으로 알고 보는 편이 낫다.
마을 밖에는 해외로 나간 이들의 돈으로 지은 요새형 망루 주택 댜오러우(碉楼)가 쯔리촌(自力村) 주변 논 한가운데 서 있다. 《양자탄비》(让子弹飞)의 일부를 찍은 곳이다. 탑은 콘크리트로 여러 층을 올렸고 철제 덧문과 옥상 정자를 갖췄는데, 그 정자는 주인이 해외에서 본 것이라면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빌려 왔다. 논둑길에서 바라보면 시내의 그 무엇보다도 세트 같지 않다.
가는 법, 그리고 헤매지 않는 법
방문객 대부분은 광저우남역(广州南站)에서 기차를 타고 장먼역(江门站)으로 온다. 장먼역은 신후이구에 있어서 구시가까지는 택시나 버스로 꽤 가야 한다. 일부 열차는 더 가까운 장먼동역(江门东站)을 이용하니, 표를 살 때 중국 철도 공식 예매 플랫폼인 12306에서 내 열차가 어느 역에 서는지 확인하자. 카이핑으로는 장먼의 버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가 떠나고, 기차는 카이핑남역(开平南站)까지 다닌다. 츠칸과 쯔리촌은 거기서 다시 현지 버스나 차로 이동해야 하고 서로도 떨어져 있으니, 구시가와 망루는 각각 다른 날에 넣는 편이 여유롭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서늘하고 건조한 몇 달이 걷기에 가장 수월하다. 여름은 덥고 습하지만 치러우는 바로 그런 날씨를 위해 지어졌으니, 그 아래에서 맞는 오후의 소나기는 건축이 제 몫을 하는 순간이다. 창디에는 해가 지기 전 마지막 두 시간에 가자. 기둥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먹거리 노점이 자리를 펴는 때다. 츠칸과 댜오러우 마을들은 자체 입장 규정을 둔 관리 구역이고, 그 규정은 바뀐다. 떠나기 전에 카이핑 댜오러우 관광지구의 공식 채널이나 장먼시 문화관광 당국을 통해 현재 조건과 운영 시간을 확인하자.
피해야 할 실수는 기사에게 주창제로 가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본 속 이름이지 주소가 아니어서, 기사마다 다르게 알아듣는다. 목적지는 창디 펑마오제나 싼스싼쉬제로 말하고, 휴대폰으로 한자를 보여 주자. 스크린숏 속 문간은 걸으면서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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