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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여울문화마을, 부산의 카메라가 자꾸만 돌아오는 영도의 절벽 마을
골목은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고, 한쪽은 거기서 그대로 끝난다. 허리 높이의 난간 너머로 비탈은 바다를 향해 떨어지고, 물 위에는 화물선 십여 척이 닻을 내린 채 뱃머리를 모두 같은 쪽, 바람 부는 방향으로 돌리고 있다. 이곳은 부산 도심에서 항구 건너편에 자리한 섬 지역 영도의 흰여울문화마을이다. 이 풍경이 낯익다면, 아마 이미 어느 카메라가 당신에게 보여 준 적이 있을 것이다.
흰 물살에서 이름을 얻은 마을
흰여울은 대략 「하얗게 부서지는 여울」이라는 뜻이다. 영도 한가운데 솟은 봉래산 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바다로 가는 길에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던 데서 이름이 왔다. 집들은 그 뒤에 들어섰다. 상당수는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건너온 가족들이 벽 하나 세울 만한 비탈이면 어디든 자리를 잡고 지은 것이다. 그들이 남긴 것은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이어진 낮은 평지붕 집들의 행렬로, 등은 산에 기대고 현관 계단은 바다를 향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공간이 얼마나 빠듯한가다. 지금 집들은 옅은 하늘색과 흰색으로 칠해져 있고 몇몇은 작은 카페와 작업실이 되었지만, 옥상에는 여전히 빨래가 널려 있고 계단에는 고추 화분이 줄지어 있다. 집과 집 사이로는 좁은 계단이 해안을 향해 떨어지는데, 경사가 워낙 가팔라 주민들이 쇠파이프를 용접해 손잡이를 달아 둔 곳이 많다. 페인트와 카페 창문은 최근의 것이다. 골목의 생김새는 그렇지 않다.
감독들이 이 골목을 거듭 프레임에 담는 이유
촬영팀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여행자와 같다. 바로 수평선이다. 한국의 도시에서 주택가 골목에 인물을 세우고, 배경 전체를 탁 트인 바다로 채우면서, 고층 건물도 도로도 화면에 들이지 않을 수 있는 곳은 드물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송강호 주연의 2013년 영화 《변호인》으로, 영화 속 언덕 장면들이 이 골목을 촬영지 지도에 올려놓았다. 이후로도 드라마와 뮤직비디오가 같은 난간과 계단을 썼는데, 집을 떠나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일 때가 많다.
닻을 내린 배들이 많은 몫을 한다. 이 배들은 부산 외항 묘박지에 머무는 선박들로, 항구에 접안할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골목에서 보면 마치 연출이라도 한 듯 고른 간격으로 미동 없이 떠 있다. 카메라가 그 배들 위에 오래 머물면 화면은 기다림으로 읽힌다. 어쩌면 그래서 이 마을이 하나의 삶과 다음 삶 사이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그토록 자주 등장하는지도 모른다. 난간 앞에 충분히 오래 서 있으면 배들이 실은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된다. 물때가 바뀌면 닻줄에 매인 채 천천히 방향을 튼다.
터널, 계단, 그리고 그 아래의 길
대부분의 방문객은 절벽 위 골목인 흰여울길을 끝에서 끝까지 걸은 뒤, 마을 아래 바다와 같은 높이로 포장된 절영해안산책로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집 사이의 계단뿐이고, 그중 긴 계단은 다시 올라올 일을 미리 셈해 둬야 할 정도다. 아래로 내려서면 길은 바위 턱을 따라 이어지는데, 바람 부는 날이면 파도가 콘크리트 바닥을 적실 만큼 물과 가깝다.
짧은 흰여울해안터널은 이곳에서 사진이 가장 많이 찍히는 곳이다. 휘어진 콘크리트 통로 끝의 출구가 렌즈처럼 바다를 담아낸다. 똑같은 정중앙 구도의 사진을 찍으려는 줄이 늘어서 있을 테니 각오하자. 줄을 서고 싶지 않다면 포즈를 잡는 사진은 건너뛰고 그냥 걸어서 지나가면 된다. 반대편 끝에서 해안을 따라 마을 쪽을 돌아보는 풍경이야말로 찍는 사람이 더 적은 장면이다.
렌즈와 함께 산다는 것
흰여울은 여전히 사람이 사는 골목이고, 마을은 그 사실을 분명히 말한다. 골목 곳곳의 안내판은 한국어로, 대개는 영어로도 목소리를 낮추고 현관이나 창문 안을 촬영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대문에 직접 안내문을 붙여 둔 집들도 있다.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이니 조용히 걸어 주세요.
이런 문구는 골목을 걷는 동안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마주치게 된다. 카페 테라스와 누군가의 현관 계단이 보도블록 한 장 차이일 때도 있어서, 구도를 잡다 보면 엉뚱한 쪽으로 발을 들이기 쉽다. 카페에도 지켜야 할 몫이 있다. 상당수가 가정집을 고쳐 바다를 향한 자리 몇 개만 두고 1인 1주문을 기대하니, 창가 자리는 공공 전망대가 아니다. 작은 갤러리와 공방은 계절에 따라 문을 열고 닫으니, 어디선가 읽은 곳이 있다면 늘 그 자리에 있는 명소가 아니라 「있을지도 모르는 곳」쯤으로 여기자.
다리를 건너갔다 돌아오기
영도와 육지를 잇는 다리는 여럿인데, 그중 가장 오래된 영도대교는 걸어서 건너 볼 만하다. 상판을 들어 올리는 도개교로, 정해진 시간에 방문객을 위해 다리를 들어 올리니 일정을 맞추기 전에 부산 공식 관광 사이트나 다리의 안내판에서 시간을 확인하자. 전쟁 중 이 다리는 헤어진 가족들이 서로를 찾는 약속 장소가 되었고, 영도 쪽 끝의 표지물이 그 이야기를 전한다.
남포동 쪽에서는 자갈치시장이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서 생선과 고등어구이를 팔고, BIFF 광장 주변 노점에서는 반으로 갈라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를 듬뿍 채운 달콤한 씨앗호떡을 판다. 그곳에서의 늦은 점심과 마을 산책을 묶으면 수월한 반나절 코스가 된다. 영도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태종대에 한층 웅장한 해안 절벽이 있지만, 마을에서 산책하듯 이어 갈 곳은 아니고 따로 시간을 내야 하는 여정이다.
가는 길, 그리고 빛을 맞추는 시간
가장 쉬운 방법은 부산 도시철도 1호선으로 남포역까지 간 뒤 시내버스로 영도대교를 건너는 것이다. 여러 노선이 마을 앞이나 근처에 서는데, 카카오맵이나 네이버 지도를 보면 그날 어떤 노선이 다니는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남포동에서 택시를 타면 금방이지만, 기사가 해안 산책로 쪽이 아니라 골목 위쪽 끝에 내려 줄 수도 있으니 어느 쪽으로 갈지 미리 말해 두자. 요금과 노선은 바뀔 수 있으니 지도 앱이나 부산시 공식 교통 정보에서 확인하자.
가장 좋은 때는 늦은 오후다. 빛이 묘박지를 가로질러 낮게 들어오고 흰 벽에 은은한 색이 스민다. 평일이 주말보다 한산하다. 늦여름은 태풍철이라 파도가 높으면 해안 산책로가 통제될 수 있으니, 날씨가 궂은 날에는 비짓부산이나 영도구청 공지를 확인하고 나서자. 꼭 피해야 할 실수는 단 하나, 맞지 않는 신발로 해안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계단은 가파르고 울퉁불퉁하며 자주 젖어 있고,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오르막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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