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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만나는 〈번화〉의 상하이: 황허루, 진셴루, 그리고 피스 호텔
왕가위 감독의 첫 TV 시리즈 〈번화〉(繁花, Fánhuā)는 2023년 겨울부터 2024년 초까지 방영되었습니다. 방영이 끝난 뒤, 사람들은 드라마 속 장소를 찾아 상하이로 모여들었습니다. 그중 두 곳은 오늘 밤에라도 걸어볼 수 있는 평범한 거리입니다. 나머지 한 곳은 한 세기 가까이 여행자를 맞아온 호텔 로비입니다.
어둠이 내린 뒤의 황허루
황허루(黄河路, Huánghé Lù)는 난징시루 북쪽으로 짧은 블록 몇 개에 걸쳐 이어지는 거리로, 인민광장에서 걸어서 금방입니다. 드라마에서는 1990년대 식당 붐이 펼쳐지는 무대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연회장들이 서로 경쟁하던 곳입니다. 지금도 거리에는 상하이 요리점이 늘어서 있고, 몇몇 가게는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간판에 불이 들어오고 저녁 손님이 한풀 꺾이는 여덟 시 이후에 가보세요. 주문은 이 도시 사람들이 평소 먹는 대로 하면 됩니다. 술에 재운 닭 요리, 훈제 생선, 간장과 설탕으로 진하게 졸인 돼지고기 같은 것들이죠. 음식은 여럿이 나눠 먹는 양으로 나오니, 두 사람이라면 다섯 접시가 아니라 세 접시면 충분합니다.
생각보다 작은 골목, 진셴루
진셴루(进贤路, Jìnxián Lù)는 옛 프랑스 조계에 자리한 좁은 골목으로, 마오밍난루와 가깝습니다. 드라마 속 심야 식당 예둥징(夜东京, '밤의 도쿄')은 바로 이런 골목에 있습니다. 카운터 하나, 테이블 몇 개, 그리고 매일 밤 찾아오는 이웃들이 있는 곳이죠. 사진 찍을 만한 특정한 문간은 없습니다. 이곳에 오는 이유는 골목 그 자체입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가족이 꾸려가는 국숫집, 그리고 보도 위 대나무 장대에 널린 빨래까지.
평일 점심이 주말 저녁보다 한결 한산합니다. 주말 저녁이면 이름난 가게 앞마다 줄이 늘어섭니다.
윤곽 그대로인 피스 호텔
피스 호텔(和平饭店, Hépíng Fàndiàn)은 와이탄과 난징둥루가 만나는 모퉁이에 서 있으며, 드라마에서는 사람들이 한껏 차려입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곳입니다. 1929년 사순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지어졌고, 지금도 초록색 피라미드 지붕과 아르데코 양식의 로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1층을 둘러보고 재즈 바에서 한잔할 수 있는데, 라이브 공연은 보통 저녁에 시작됩니다.
《繁花》里的上海,一半在街上,一半在摄影棚里。
드라마 속 상하이의 절반은 거리에, 나머지 절반은 세트장에 있습니다. 실내 장면 상당수는 세트에서 촬영되었기에, 이 거리들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드라마의 정확한 장면이라기보다 그 질감입니다. 이 거리들은 카메라가 오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늘 하던 대로 제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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